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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증적 비용-효과비(ICER)에 매몰된 경제성평가

우리나라 신약 약가제도 중에는 비용 대비 효과적인 의약품을 선별해 건강보험에 등재시키는 '경제성 평가(이하 경평)' 제도가 있다.
경평 제도는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게이트 키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특정 약제를 어떤 기준의 환자들에게 적용했을 때, 가장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지를 엄중하게 검토해 건강보험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사실 '의약품'의 본연의 역할을 고려해볼 때, 약효에 초점을 두는 것이 정론이긴 하다. 결국 의약품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고, 삶의 질 및 기대 여명을 개선하고자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비를 넘어선 ‘사회의 관점’도 이제 함께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특정 암이나 희귀질환의 경우, 사회 경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연령대에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들 환자들은 치료를 통해 질환이 개선된다면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향후 그 주체로 성장할 수도 있다.
이는 곧 국가 경제력으로 귀결될 수 있다. 단순히 건강보험 재정 소모 요인으로만 바라봐선 안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한 가정 또는 구성원 안정화에도 기여한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라도 투병을 하게 된다면, 당사자를 포함한 모든 인원들이 심리적, 육체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그 대상이 한 아이의 어머니일 수도 있고,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일 수도 있다.
이 경우 가족들은 모든 사회적 활동들이 위축되고, 본인의 능력을 넘어서는 무리한 행동들이 강제될 수도 있다. 결국, 한 사람의 질병이 한 가족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현재 의약품 경제성평가에 있어 'ICER 임계치(ICER threshold)'라는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ICER는 점증적 비용-효과비(Incremental Cost Effectiveness Ratio, ICER)를 뜻하는데, 비용 대비 얼마나 '삶의 질을 고려한 생존기간 연장(Quality Adjusted Life Years, QALY)'이 이루어졌는지 고려해 정량적으로 계산한다.
다만, 이 지표 계산에 있어 고려되는 요인들은 약제의 가격과 효과 뿐이다. 부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손실비, 간병비, 교통비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즉, 신약 사용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다양한 시각에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전 정권부터 정부는 질병의 위중도, 사회적 질병부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 혁신성 등을 고려해 ICER 임계값에 탄력성(Flexibility)을 부여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지만, 여기에 사회 복귀로 인한 경제적 효과도 고려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혁신 신약 개발 속도는 점차 가속되고 있다. 새로운 물질이 개발되는 것과 더불어, 제약사 간 협업을 통한 새로운 병용 요법들도 등장하고 있다. 이들 중 어떤 약제에 건강보험을 적용시킬지는 참 어려운 문제다.
물론, 제1의 요소는 당연히 연구로 입증된 안전성과 유효성 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암 환자, 희귀질환자의 장기 생존과 완치도 꿈꿀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단기 재정 효과 만이 아닌, 환자 삶과 사회의 변화까지 함께 보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