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혈관·신장·수면장애 적응증 FDA 승인 속속
치매·암 연구도 활발…장기 추적·대규모 임상 필요성 강조돼

비만 치료제로 출발한 GLP-1 계열 약물이 이제는 당뇨병, 심혈관 질환, 수면장애 등 다양한 만성질환 치료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여러 GLP-1 약물에 대해 적응증 확대를 승인했다. 제약사들은 새로운 치료 분야를 적극 공략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알츠하이머병, 암 등 고난도 질환까지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신경계나 종양 분야에서 아직 충분한 임상 검증과 장기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31일(미국 현지시각), 일라이 릴리(이하 릴리)는 GIP/GLP-1 이중작용제 '마운자로(성분 터제파타이드)'가 기존 GLP-1 유사체 '트루리시티(성분 둘라글루타이드)'와 직접 비교 임상 3상에서 주요심혈관질환(MACE-3) 발생률을 8% 낮췄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2형 당뇨병과 확립된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ASCVD)을 가진 환자 1만여명을 대상으로 수행됐다. 마운자로는 당화혈색소(A1C), 체중, 신장 기능, 전체 사망률 개선에서도 추가 혜택을 보여 향후 심혈관 질환 예방 적응증 추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GLP-1 계열의 심혈관 효과는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성분 세마글루타이드)'에서도 확인됐다. 위고비는 심혈관계 질환을 가진 과체중·비만 환자에서 주요 심혈관 사건 발생률을 20% 감소시키며 지난해 8월 주요 심혈관계 사건(MACE) 예방 적응증을 획득했다. 1만7000명을 대상으로 한 SELECT 임상에서 위고비 2.4mg은 위약 대비 심혈관 사망, 비치명적 심근경색, 뇌졸중, 불안정 협심증 입원, 재관류술 시행 등 MACE 발생 위험을 22% 낮췄다. 또한 박출률 보존 심부전(HFpEF)을 동반한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STEP-HFpEF DM 3상에서는 체중 감소와 함께 심부전 증상도 유의하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장질환 영역에서도 GLP-1 계열 약물의 적응증 확대가 이어지고 있다. 노보노디스크의 '오젬픽(성분 세마글루타이드)'은 2020년, 만성 콩팥병을 동반한 제2형 당뇨병 환자에서 MACE 위험을 낮추는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으며, 올해 1월에는 신장질환 적응증에 대해서도 추가 허가를 받았다. 승인 근거가 된 FLOW 임상 3상 연구에 따르면, 오젬픽은 투석, 신장이식, 사구체여과율(eGFR) 50% 이상 감소 등으로 구성된 복합 평가 항목에서 위약 대비 만성 신장질환 위험을 24% 유의하게 줄였다. 현재 오젬픽은 말초동맥질환으로의 적응증 확대도 추진 중이다. 노보노디스크는 관련 임상 3b상 결과를 유럽의약청(EMA)에 제출했으며, 적응증 추가 승인을 위한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수면장애 분야에서도 치료 적응증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 릴리의 '젭바운드(성분 터제파타이드)'는 2023년, 비만 성인의 폐쇄성 수면무호흡증(OSA) 치료제로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 임상 3상 SURMOUNT-OSA에 따르면, 위약군은 AHI(무호흡-저호흡 지수)가 기준선 대비 시간당 4.8건 감소한 데 비해, 터제파타이드는 27.4건 감소를 보여 통계적으로 유의한 개선 효과를 입증했다.
치매, 암 등…가능성은 있지만 '검증 아직'

GLP-1 수용체 작용제의 적응증 확대 가능성은 치매와 암 등 신경계·종양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알츠하이머협회 국제콘퍼런스(AAIC)에서 발표된 연구에서는 경증 알츠하이머 환자 204명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임상에서 리라글루타이드를 1년간 투약한 결과, 인지기능 저하율이 18% 감소하고 뇌 위축 억제효과도 확인됐다.
또한 지난 6월 국제학술지 Alzheimer Disease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의대 연구진은 미국 내 170만 명의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타깃 트라이얼 모사(target trial emulation) 연구에서 세마글루타이드를 복용한 환자군에서 인슐린 사용군 대비 치매 발생 위험이 최대 46% 낮았다고 보고했다.
다만 '타깃 트라이얼 모사' 방식의 연구는 약물 복용과 질병 예방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한 것은 아니다. 통계적으로 관련성이 있다는 정도만 보여주는 분석이기 때문에, 실제 효과를 확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앞선 두 연구 모두 연구 기간이 짧고 대상자 수도 많지 않아 결과를 모든 환자에게 일반화하기는 어렵고, 향후 작용 기전을 밝히는 기초 연구와 대규모 임상시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항암 효과와 관련해서도 GLP-1 계열 약물의 가능성이 일부 연구에서 제시되고 있다.
야엘 울프 사기(Yael Wolff Sagy) 이스라엘 플래릿 보건서비스 연구팀은 지난 5월 열린 2025 유럽비만학회(ECO 2025)에서 "GLP-1 수용체 작용제를 투여한 환자에서 비만 수술을 받은 환자보다 비만 관련 암 예방 효과가 41% 더 높았다"고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비만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GLP-1 약물 투여군보다 체중 감량 폭은 약 2배 컸지만, 암 발생 위험은 GLP-1 치료군에서 더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비만 수술 역시 암 위험을 30~42%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수술과 관련된 다양한 부담을 고려할 때 GLP-1 계열 약물이 비만 관련 암 예방에 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암 위험 감소는 체중 감소에 따른 간접 효과일 가능성이 높으며, GLP-1의 항암 효과가 독립된 치료 기전인지에 대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드로르 디커 텔아비브대 교수는 "염증 억제 등 다양한 기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암종별 반응 차이, 병용요법 효과, 환자 상태 등 다양한 변수까지 고려할 경우, 항암 치료제로의 적응증 전환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확장 가능성은 있어…임상 3상·장기 추적 필요
바카라 룰 계열 약물은 비만 치료를 넘어 다양한 만성질환으로 적응증을 넓혀가며, 새로운 치료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신경계 질환이나 암 등 새로운 적응증의 경우,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으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장기간 추적 관찰과 무작위 임상 3상 결과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향후 연구의 진행과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워싱턴대학교 지야드 알-알리(Ziyad Al-Aly) 교수는 "최근 연구들이 GLP-1 계열 약물이 만병통치약이라는 뜻은 아니다"라며 "환자 특성에 맞춘 치료 전략 수립과 함께, 장기적인 효과와 부작용을 정밀하게 평가하는 후속 연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