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셉틴·아일리아 시밀러로 유럽 시장 진입… 국내 기업 본격 경쟁 합류

한때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양분하던 국내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뚜렷하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에이프로젠, 삼천당제약, 알테오젠을 비롯한 중소·중견 바이오기업들이 본격적인 글로벌 상용화와 파이프라인 확장을 통해 산업의 판을 다시 짜고 있다. '팔로워'로 분류되던 이들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실질적인 존재감을 보이며, 한국 바이오시밀러 산업의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프레스티지라이브바카라파마는 유럽 시장에서 '허셉틴(성분명 트라스트주주맙)' 바이오시밀러 '투즈뉴'의 허가를 획득하고, 글로벌 제약사 테바(Teva)와 유럽 30여 개국에 대한 독점 라이선스 및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첫 상업 매출을 달성했다. 이 계약은 단순한 유통 계약을 넘어, 유럽 시장의 규제 및 유통 인프라를 공유하는 전략적 협업 구조로 평가받는다.
현재 프레스티지는 '아바스틴(성분명 베바시주맙)', '휴미라(성분명 아달리무맙)' 등 다수의 항체의약품 시밀러 개발도 병행 중이다. 최근 반기 실적에서는 영업손실이 대폭 축소됐고, 순이익 기준으로는 창사 이래 첫 흑자를 기록하며 재무 안정성까지 확보했다. 회사 측은 유럽을 넘어 중남미 등 신흥시장으로의 진출도 모색하고 있으며, 공격적 마케팅 전략과 적응증 확대를 통해 실질적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에이프로젠은 허셉틴 라이브바카라 'AP063'의 글로벌 허가를 목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을 중심으로 전략적 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특히 EMA가 최근 라이브바카라에 대한 임상 3상 생략 가능성을 공식화하면서, 품질자료와 임상 1상 결과만으로도 품목 허가가 가능해지는 환경 변화가 생겼다.
이는 중견기업 입장에서 개발비용을 크게 줄이면서도 글로벌 시장에 조기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에이프로젠은 이 같은 제도적 변화에 발맞춰 리툭산, 휴미라, 레미케이드 등 후속 시밀러 개발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준비 중이다. 특히 파이프라인 간 임상 전략을 병렬적으로 진행하며 허가 속도를 높이고 있다.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성분명 아플리버셉트)'의 라이브바카라 개발은 또 하나의 경쟁 축이다. 삼천당제약은 캐나다에서 아일리아 시밀러로 품목 허가를 획득한 데 이어,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판매 계약을 체결하며 상업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는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개발 모델을 통해 안정적 수익 기반을 확보하고 있으며, 후속 제형 다변화 전략도 병행 중이다.
알테오젠 또한 자체 개발한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ALT-L9’(제품명: Eyluxvi)에 대해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로부터 품목 허가 긍정 의견(positive opinion)을 확보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두 번째 상업화 제품의 등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CHMP 의견 이후 2~3개월 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공식 허가가 이뤄지는 만큼, 하반기 중 유럽 시장 출시가 유력하다.
ALT-L9은 자회사 알테오젠바이오로직스와 공동 개발한 제품으로, 습성 연령관련 황반변성(wAMD), 당뇨병성 황반부종(DME) 등 적응증을 갖는 연매출 13조원 규모 블록버스터 치료제 아일리아의 라이브바카라다. 이번 허가는 2022년 6월부터 2024년 2월까지 한국, 유럽, 일본 등 12개국에서 wAMD 환자 4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 임상 3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 알테오젠은 ALT-L9이 오리지널 아일리아와 비교해 동등한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특히 ALT-L9은 제형과 제법에 대한 복수의 원천특허를 보유하고 있어, 경쟁 라이브바카라 대비 지적재산권 측면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평가다. 앞서 알테오젠은 허셉틴 라이브바카라 'ALT-L2'를 중국 치루제약에 기술이전하고 현지 허가 및 판매에 따른 로열티를 수령하고 있어, 이번 ALT-L9은 두 번째 상업화 성공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라이브바카라 시장의 글로벌 성장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있다. 2028년까지 시장 규모는 약 765억~800억달러(약 100조원), 2033년에는 2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블록버스터급 바이오의약품의 잇따른 특허 만료,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 증가, 각국 정부의 의료비 부담 완화 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여진다.
특히 미국 FDA와 유럽 EMA는 최근 바이오시밀러 승인 절차에서 임상 3상 생략, 대체의약품 지정을 통한 약물 간 전환 허용 등 규제 완화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과거 대규모 자금과 임상 노하우가 필수였던 바이오시밀러 개발의 장벽을 낮추며, 중소·중견 기업에도 글로벌 진입의 실질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중소·중견 K-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은 글로벌 제약사와의 파트너십 확대, 임상·허가 전략의 다각화, 제품 포트폴리오 강화 등을 통해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점차 키워나가고 있다. 비록 대형 기업과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틈새시장을 빠르게 공략하며 기술력과 사업 역량을 축적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글로벌 상업화 경험을 축적한 기업이 늘어날수록, K-바이오시밀러 산업 전반의 경쟁력도 상승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