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글루타이드, MASH 환자 '72개 단백질 시그니처' 역전시켜

비만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체중감량뿐 아니라 간 질환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실질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노보 노디스크 연구팀은 위고비가 체중을 줄이면서 몸속 단백질의 구성을 바꾸고, 이런 변화가 간 염증과 섬유화(흉터) 같은 병적인 상태를 개선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세계적 의학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최신자로 실렸다.
특히 이번 연구는 체중 감소 효과를 넘어서, 세마글루타이드가 어떻게 간 조직의 염증과 섬유화를 개선하는지를 단백질 수준에서 분석한 첫 번째 대규모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세마글루타이드는 본래 GLP-1 수용체 작용제(GLP-1 receptor agonist)로, 식욕을 줄이고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여 당뇨병과 비만 치료에 사용되어 왔다. 이 약물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비만 및 제2형 당뇨 치료제로 이미 승인받은 바 있다.
연구진은 이 약물이 대사기능 이상 지방간염(MASH)에도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생검으로 질환이 확인된 환자 320명을 대상으로 임상 2상을 실시했고, 72주간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한 환자군에서 59%가 MASH로부터 회복된 반면 위약군에서는 17%에 불과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간세포 손상 없이 질환이 해소된 경우가 단순히 체중 감소 때문인지, 아니면 약 자체의 독립적 생물학적 작용이 추가적으로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세마글루타이드, 간 질환 개선은 직접 섬유화 줄이는 효능인 듯
세마글루타이드가 간 질환을 개선하는 이유가 단순히 살이 빠졌기 때문인지, 약 자체에 특별한 작용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통계 기법을 사용해 분석했다.
그 결과, 간에 기름이 끼는 문제나 세포가 손상되는 증상은 살이 빠지면서 함께 좋아졌지만, 간에 생긴 흉터는 살이 빠졌기 때문만은 아니었고 약이 체중 감량과는 상관없이 따로 작용한 영향이 더 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세마글루타이드가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간에서 병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생물학적 경로에 직접 작용해 섬유화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혈액 내 단백질 변화를 분석했다. 연구에 참여한 환자들의 혈청에서 총 4979개의 단백질을 대상으로 고밀도 단백질 분석을 실시했고, 이 중 세마글루타이드 치료와 MASH 회복에 모두 유의하게 관련된 72개의 단백질을 찾아냈다.
이들 단백질은 대사, 염증, 섬유화와 관련된 생물학적 경로에 걸쳐 있으며, MASH 환자에서는 건강한 사람과 다른 방향으로 조절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받은 환자들에서는 이 단백질들의 수치가 대부분 건강한 사람 수준에 가까워졌다.

MASH와 직접 연관 있는 단백질도 발견돼...바이오마커 가능성은?
연구팀은 이 단백질 변화가 단순한 체중 감소의 결과인지, 아니면 독립적인 생물학적 작용에 의한 것인지도 추가 분석했다. 위약군 중 체중이 줄어든 환자와 세마글루타이드 투여군을 비교한 결과, 72개 단백질 중 26개는 체중 변화와 무관하게 세마글루타이드에서만 유의미한 변화를 보여, 체중감소 외적인 작용 경로가 존재함을 시사했다.
또한 이 연구는 세마글루타이드의 작용 기전을 확인하기 위해 두 가지 마우스 모델을 활용한 동물실험도 병행했다. 하나는 인간과 유사하게 비만과 간염을 동반하는 DIO-MASH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체중 증가 없이 간 손상이 빠르게 진행되는 CDA-HFD 모델이다.
두 모델 모두에서 세마글루타이드 투여는 간 섬유화를 감소시키고, 섬유화에 관여하는 유전자(TIMP-1, TIMP-2, MMP13, collagen 등)의 발현을 억제하는 효과를 보였다. 특히 CDA-HFD 모델에서는 비만이 없는 상황에서도 세마글루타이드가 섬유화를 억제해, 이 약물이 단순한 체중감소제 이상의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했다.
흥미로운 점은 인간과 마우스 모두에서 간 조직 내 세포들에서는 세마글루타이드의 직접 수용체인 GLP-1 수용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이 약물이 간세포, 별세포, 면역세포 등 간 내부 구성 세포에 직접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이나 지방조직과 같은 간 외부 기관에서 단백질 신호를 바꾸고, 그 신호가 간으로 전달되어 병리 기전을 조절하는 방식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분석됐다.
물론 이번 결과가 장기간 복용 시에도 같은 효과가 유지되는지, 실제 간 질환 치료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팀도 논문에서 이러한 단백질 변화가 장기적인 임상 혜택으로 이어지는지는 후속 검증이 필요하다고 서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마글루타이드가 체중 감량을 넘어 간과 염증에 미치는 영향을 분자 수준에서 자세히 분석한 이번 연구는 대사질환 치료제의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비만과 간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이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임상 연구와 적용이 기대된다.
참고문헌
Modulation of metabolic, inflammatory and fibrotic pathways by semaglutide in metabolic dysfunction-associated steatohepatitis. Maximlian Jara et al. Nature Medicine. July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