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혁신신약살롱'서 사노피·GSK 협상 전략 공유
"빅파마 지분투자까지 이뤄지는 기술 딜을 소망해"

퇴근하고 집에 가고 싶은 평일 저녁, 판교살롱의 열기는 뜨거웠다. 최근 글로벌 빅파마 GSK에 4조원대 빅딜을 성사시킨 ABL바이오 이상훈 대표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연구자, 기업인, 사업 개발 전문가 등 다양한 업계 관계자 70여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상훈 대표는 24일 저녁 판교 코리아바이오파크에서 열린 '혁신신약살롱'에서 ABL바이오의 연구개발 과정과 함께 라이센싱 아웃의 노하우를 90분간 공유했다.
"제 꿈은 대한민국에서 사이언스를 제일 잘하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다, 매출도 중요하고, 사업 개발도 중요하지만 사이언스를 잘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
이같은 경영 철학을 밝힌 그가 이룬 글로벌 빅딜의 성과는 기술력이라는 디폴트 값에다, 치밀한 준비와 인내, 그리고 타이밍이 있었다.
이 대표는 사노피와 기술이전 과정을 돌아보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회사마다 실사(Due Diligence)의 분위기가 다르다. 미국 기업은 데이터를 모두 공유하고 몇 차례 미팅을 하면 실사가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프랑스 기업은 보고서를 모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ABL바이오는 실제로 사노피에 80개의 보고서를 제출했고, 7월에 텀시트(term-sheet)를 받았을 때는 금방 계약이 성사될 것이라 기대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사노피는 JP모건에서 1000개가 넘는 회사를 검토한 뒤 3개월 후 200개, 다시 100개로 좁혀나갔고, 결국 1년 1~2개만 계약을 맺는 구조였다. ABL바이오도 실제 계약이 성사되기까지 1년이 걸렸다.
이후 두 번째 실사 보고서가 넘어갔고, 사노피 측에서 MTA를 제안했다. 일반적으로 MTA에서는 binding affinity, in vitro assay 등 간단한 효능 평가만 요구하지만, BBB 셔틀의 경우 BBB투과를 확인해야 하기에 동물실험이 필요했다.
실사에서 사노피는 동물에 대한 투여는 프랑스에서 진행하고, 독일에서 조직을 채취한 뒤, 해당 샘플을 미국으로 보내 분석했다. 하지만 프랑스, 독일, 미국 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아 1차 MTA는 실패했고, 이로 인해 계약도 성사되지 못했다.
그 때 이 대표가 떠올린 사람이 있다. 당시 사노피 R&D 총괄이었던 존 리드(John Reed)다. 여러 빅파마와 미팅은 대체로 딱딱한 분위기였지만, 프랑스 기업인 사노피는 인간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위기의 순간 그는 존 리드와 함께했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가 ABL바이오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MTA 실패 이후 급히 존 리드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존 리드는 답장으로 "빅파마는 모두 MTA를 반드시 진행하며, MTA가 실패하면 계약도 불가능하다. 그게 원칙이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1차 MTA에서 분석 방법이 잘못됐다는 의견을 그에게 제시했다. 당시 ABL바이오가 사용한 방식으로 분석했어야 했지만, 사노피의 BBB 셔틀 팀 방식으로 실험이 진행됐던 것이 실패 요인이라고 반론을 폈던 것이다. 존 리드는 이에 동의했고, 두 번째 MTA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두 번째 MTA는 그 해 12월 첫째 주에 착수돼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어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 기간 중 계약 서명을 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당시 사노피의 CNS 뉴로바이올로지 헤드였던 로랑 프라디에(Dr. Laurent Pradier)는 은퇴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에서 그는 "과거 파일을 정리하던 중, ABL바이오와 첫 교류가 2017년이었는데, 이후 매난 만날 때마다 ABL바이오는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했고, 결국 그 과정이 2022년 파트너십 체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상훈 대표는 이에 대해 "처음 5년은 거의 정기적으로 만나 업데이트만 했지만, 그 과정에서 빅파마들이 궁금해했던 실험들을 하나씩 추가해나갔다. 이 질문들은 ABL바이오가 애초에 하지 않았던 실험들이었고, 결국 이 실험들을 통해 상대의 요구에 부합하게 됐으며, 그것이 딜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GSK와 계약은 다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사노피와 계약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GSK와 논의가 시작됐는데, 딜이 곧 성사될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11월이 되자 GSK는 논의 중단을 통보했다. 그로부터 2년의 공백이 지난 후에서야 GSK 측에서 다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두 회사는 JP모건에서 1월 13일 오전 9시에 첫 미팅을 가졌고, 1시간 동안 논의가 이어졌다. 미팅 이후에 상대가 만족한 듯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GSK 측은 ABL바이오의 귀국 일정에 대해 묻고는 귀국 전 날 다시 만나자고 제안했다. 두 번째 미팅에서 계약의 전반적인 구조와 타임라인에 대해 최종 합의가 이뤄졌다. 결국 사인까지 마무리됐다.
이상훈 대표는 프랑스 기업인 사노피는 당일 밤에 줌 미팅을 하고 합의한 사항이 있더라도 다음 주에는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도 적잖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딜이 체결되고 나니 매우 우호적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반면 GSK는 정확히 계획을 세우고, 3개월 안에 마무리하기로 한 사항은 정확히 그 안에 끝냈다고 말했다. 회사마다 다른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L/O 금액 측면에서는 로열티가 가장 큰 논의 대상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L/O 계약 시에는 로열티 비율, 단기 마일스톤 지급 시점, 전체 가치를 놓고 협상이 벌어진다. 계약금은 각 회사가 생각하는 최대 예산이 정해져있는데 그 범위 안에서 계약이 진행된다는 설명이다. 이번에 ABL바이오가 GSK와 이뤄낸 4조 원이라는 계약 총액은 상업적 가치를 포함한 수치다.
GSK와 협상에서 ABL바이오가 유리했던 이유는 협상 상대가 GSK 하나만이 아니라는 점을 은연중 전달했기 때문이다. 상대방(빅파마)이 자기 회사 외에는 선택지가 없을 경우(싱글 컨택)로 여기면 협상력이 떨어지지만, 여러 회사와 접촉 중이라는 신호를 주면(멀티 컨택) 협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끝까지 협상을 끌고 가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지분투자까지 이뤄지는 기술이전 딜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짧게 언급한 이상훈 대표는 "바이오 비즈니스에서 라이선싱은 결국 타이밍"이라고 했다. "펀딩도 마찬가지로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타이밍을 재다가 경기 침체가 오면 계약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100원을 받아야 한다는 욕심보다 80원만 받아도 만족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딜의 속도가 붙고, 클로징도 빠르게 이뤄진다. 이번 계약 역시 그런 판단과 결정이 맞아떨어졌다"고 그는 분석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업계 관계자는 "빅파마와 딜을 어떻게 했는지, 어디서 엎어지고, 어디서 다시 이어졌는지 들을 수 있어 도움이 됐다"며 "특히 협상 주도권을 가져오는 실전 전략이 매우 유익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BD 관계자는 "에이비엘바이오가 이룬 딜은 단순히 한 회사의 성공이 아니라, 국내 바이오텍 전체 신뢰를 높여주는 사례"라며 "글로벌 제약사와 빅딜이 많아질 수록 국내 바이오텍에 빅파마의 관심이 쏠리고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다"며 "그 자체로 높이 평가할만한 성과"라고 전했다.
모이고, 배우고, 토론하는 "혁신신약살롱"
혁신신약살롱은 2012년 대전에서 시작된 신약개발 지식 교류 커뮤니티로, 폐쇄적인 연구문화를 넘어 '다양한 전문가들의 느슨한 교류'를 목표로 만들어졌습니다. 판교, 오송, 송도 등지에서 정기 오프라인 모임이 열리며, 연사의 발표와 자유로운 토론을 중심으로 생명과학 및 신약개발 분야의 현안을 공유합니다. 혁신신약살롱은 발표자의 재능기부와 참가자들의 자발적 기여, 한국바이오협회 및 CDD(Collaborative Drug Discovery), 애임스바이오사이언스 등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