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길이 아니라 올바른 길을 가라.", "기본은 언제나 어렵고, 새롭고, 위대하다." 화려한 전략보다 꾸준한 기본을, 효율성보 다 방향성을 중시한 이 말들은 문화예술, 경제·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거장들의 철학을 함축한다. 

요즘과 같은 위기와 변화의 시대에도 '기본'의 위대함은 여전히 유효할까? 불안을 앞세워 더 빠르고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받는 시대에 '뼈대 있는 기본'을 지켜 의료의 본질적 가치를 실현해가는 은성의료재단 '좋은병원들' 네트워크를 찾아 그 해답을 들었다.   

은성의료재단 좋은병원들(이하 은성의료재단) 구자성 이사장은 "환자와 직원과 사회가 가장 좋아하는 병원이 좋은 병원이라고 생각한다"며 "재단의 역사가 깊은 만큼 좋은 전통과 DNA를 계승하면서 사회가 새롭게 요구하는 역할에 충실하게 답하는 의료재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외 경제가 3고(고물가, 고금리, 고환율)로 시름하고 의료계에 의정 갈등이라는 정치적·정책적 리스크가 몰아닥친 불황 속에서 어떻게 이런 성장이 가능했는지 짚어보자면 "어려울수록 기본 에 충실했다"는 구 이사장의 말은 일견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는 "의료법인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다"라며 "의료기관의 공공적 역할에 시민과 사회가 무엇을 바라는지 민감하게 인식하고 사회적 책임을 잊지 않으면 위기도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성의료재단은 반세기 역사를 지닌 국내 최대 규모 의료법인 중 하나다. 1978년 의원급 의료기관인 구정회 정형외과와 문화숙 산부인과를 모태로 출발해 47년이 지난 지금, 5개 종합 병원과 7개 요양병원을 갖춘 12개 병원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비영리 원칙과 수익성 사이에서 의료 본업의 연속성과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부대사업으로 눈을 돌리는 여타 법인들과 달리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 본업에 집중하면서 성장을 거듭해 온 전략적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은성의료재단의 성장 비결은 '환자, 직원, 지역사회가 가장 좋아하는 병원'으로 요약된다. 구 이사장은 먼저 "우리 병원에 오신 환자는 우리가 끝까지 치료해 드리자는 생각이 진료 영역과 병원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며 "내원한 환자를 병원이 수용하지 못할 경우 다른 의료기관으로 이송해야 하는데, 복잡한 이송 절차 때문에 불편을 초래하거나 치료가 지연돼 질병이 악화할 위험을 막고 환자들이 최대한 편안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고 말했다. 

재단 소속 직원들의 근속과 삶의 질 향상도 경영진이 큰 관심을 둔 대목이다. 구 이사장은 "직원들이 오래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병원 인프라를 확장해 왔다"며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과 인사 순환을 통해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성장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다"고 말했다. 

은성의료재단은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고 주민의 삶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구 이사장은 부친인 구정회 전 이사장과 모친인 문화숙 원장의 경영 방침을 이어받아 지역 주민의 건강과 생활 안정을 위한 사회공헌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의료법인을 잘 운영해 지역 주민에게 치료 혜택을 제공하고 건강 수준을 높이는 것 자체가 사회공헌이라고 생각한다"며 "주로 다문화 가정 의료 접근성과 생활 안정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웠던 사회공헌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성과로 바꾸기 위한 변화는 필요했다. 재단은 그동안 장학사업을 통해 다문화가정 이주 여성의 한국어 습득과 검정고시 도전을 지원하고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 학습지를 제공해 학업 성취도 향상을 돕는 장학사업을 계속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수혜자들의 삶이 실제로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다.

구 이사장은 "그동안 지자체 추천 등을 통해 장학 대상자를 선정했는데, 현재는 공모와 심사를 거쳐 꿈과 목표가 있는 지원자들을 선정하고 집중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며 "공모 과정에서 그들의 '절실함'과 교감하고 격려하다 보니,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의 태도와 의지도 크게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고 전했다. 

형식보다 내실을 바라보는 세심함으로 '좋은 병원'의 가치를 만들어 온 은성의료재단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수준 높은 의료를 제공하는 '2.5차 병원'을 표방한다. "사회와 제도가 규정한 2차 병원의 역할에 한계를 두지 않고 '중증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지역 의료 거점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병원을 선택해 준 환자들에 대한 보답이자 진정한 공헌"이라는 소신 때문이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심정지 환자 발생을 알리는 '응급 코드'가 방송을 타고 나오자 시간이 멈춘 듯한 무게와 긴장감이 감돌았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구 이사장의 침묵 너머로 의료진의 분주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경증질환은 1차, 중증질환은 3차, 경증과 중증을 제외한 질환 치료는 2차 의료기관이 담당한다는 인식을 넘어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빨리' 위급한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 필요하다는 환자들의 수요는 지금의 은성의료재단을 만들었다. 

좋은문화병원은 산과, 부인과 진료를 시작으로 부인과내시경수술센터, 난임센터, 자궁근종센터, 미용성형재건센터, 유방센터, 소화기내시경센터 등 16개 전문센터를 보유한 여성전문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좋은강안병원은 지역 2차 병원으로서는 유일하게 독립된 암센터 건물을 갖추고 종양혈액내과와 방사선종양학과 등 전문화된 암 치료를 활발하게 시행하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유방암센터, 간담췌센터, 이식센터, 핵의학과 등 암 치료와 관련된 다학제적 협진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좋은삼선병원은 정형외과 전공의 수련병원이자 롯데자이언츠 지정 병원일 만큼 정형외과가 오래전부터 특성화·전문화되어 있는 병원이다. 최근에는 심·뇌혈관 질환과 각종 중증환자 치료 분야에 투자를 강화하며 병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명실 상부한 서부산 거점 종합병원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다. 구 이사장은 이와 관련 "인구 고령화에 따라 질병 양상이 바뀌고 의료 환경에 따라 병원이 담당하는 역할도 달라진다"며 "코로나19 펜데믹이 닥쳤을 때 의료계가 대부분 의료 역량과 자원을 감염병 치료에 집중한 것처럼 사회적 기대와 병원의 책무가 만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의료의 특성이고 사명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인구 고령화와 심각한 저출산 속에서 산부인과가 침체하는 가운데서도 절실한 미충족 수요가 존재했다"며 "산부인과의 정통성을 유지하면서도 난임, 유방암, 갑상선암 등을 포함한 여성질환에 대한 사회적 수요에 맞춰 여성 전문 종합병원의 면모를 갖춰나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의료 수요를 병원이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만"이라며 "병원 주도가 아닌 환자 중심으로 형성된 의료 수요에 따라 전문성을 강화해 나가며 지역 중증질환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2.5차 병원으로 자리잡겠다"고 말했다.

전통과 본질을 강조하면서도 조용하고 강력한 혁신을 추구한 은성의료재단은 더 나은 성과를 위해 디지털 혁신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좋은병원들' 네트워크가 부산에서 울산, 경남, 경북으로 입지를 넓혀 4700여명의 직원이 종사하는 의료법인으로 성장하는 동안 일하는 방식과 효율성 면에서 변화가 필요했다. 구 이사장은 "좋은병원들 네트워크는 디지털 환경 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의료법인 중 하나"라며 "구글 워크스페이스를 병원 업무에 도입해 소통과 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해 구글코리아와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 워크스페이스(Google Workspace)는 온라인 환경에서 문서 작성, 일정 관리, 화상 회의 등을 여러 명이 동시에 할 수 있고 빠른 팀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에 특화된 클라우드 기반 업무 솔루션으로, IT기업과 대기업 등이 주로 활용한다. 외국에서 의료기관 내 협업과 환자 원격 상담, 공동 연구 등에 이를 활용하는 사례가 일부 있지만, 국내 의료기관에 도입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구 이사장은 "병원 운영은 의료진의 경험과 손끝에서 나오는 의료 기술, 그리고 따뜻한 간호와 돌봄을 통해 환자를 치료한다는 점에서 아날로그"라고 정의했다. 최근 의료 영역에 확산하는 디지털 기술에 관해서는 "의료를 대체할 수 없지만 의료진이 환자를 좀 더 잘 케어하도록 돕는 보조수단이 될 수 있다"며 "의료서비스에 수반되는 각종 행정 업무 프로세스를 단축하고 효율화하는 수단도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단은 올해 좋은문화병원 설립 47주년, 좋은삼선병원 개원 30주년, 좋은강안병원 설립 20주년을 맞이하는 등 새로운 도약을 위한 변곡점에 들어섰다. 작년 7월 재단의 수장을 맡아, 오는 7월 취임 1주년을 맞이하는 구 이사장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전례 없던 의료대란과 기술·제도 환경이 의료의 절대 우위를 위협하는 고비마다 생존과 성장을 동시에 견인해야 할 '구자성표' 경영에 큰 기대와 시선이 쏠려 있다.  

그는 "1년 또는 그보다 더 짧은 주기로 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너무 먼 미래를 고민하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는 편"이라며 "간부들과 정례적으로 만나 '좋은 병원', '좋은 조직'을 만들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변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우수한 인재를 모시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한 분 한 분을 모시기 위해 발로 뛰고 있다"며 "좋은 의료진이 오래 머물 수 있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 정성스러운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 MBA 과정을 거쳐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컴퍼니에서 경영컨설턴트로 근무한 경험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의학과 경영 전문성을 겸비한 독특한 이력을 십분 활용해 병원의 외형적 성장 뒤에 가려진 '소프트 파워'에도 힘을 싣는다.  

구 이사장은 "의료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성장하는 미래를 준비하려면 열린 조직 문화가 필수적"이라며 "의료진뿐만 아니라 IT, 경영, 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격의 없이 어우러져 소통할 수 있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0대부터 80대, 1년차부터 30년차까지 다양한 직원들이 함께 근무하면서 병원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만들어 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좋은 직원과 의료진이 오래 머물러 환자의 삶과 기억에도 오래 남는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으로 계속 성장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