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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없이 선택한 타깃…시장이 원하는 것 먼저 보아야

한국에서는 창업이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지는 구조다. 교수 출신 연구자가 논문에 실었던 단백질이나 작용 기전 하나를 들고 나와 회사를 세운다. '스핀오프'라는 포장 아래, 실상은 '자신이 하던 연구'를 기업으로 옮긴 것에 가까운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 연구가 글로벌 관점에서 과연 유효한 타깃인지, 경쟁력 있는 구조인지, 사업성이 있는 기전인지에 대한 철저한 검토 없이 '신약개발'이 시작된다는 데 있다.
글로벌 바이오텍은 보통 질병의 미충족 수요(unmet need)를 우선적으로 살핀다. 기존 치료제의 한계를 분석한 뒤, 그에 기반한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고, 이후에 타깃을 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연구는 이러한 설계 위에서 출발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개발의 출발점이 개인의 연구 경험이나 기존 실험 주제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타깃 설정이 먼저 이뤄지고, 왜 그 타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뒤로 밀리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구조는 창업 단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기업 내부에서도 유사한 방식이 이어진다. 경영진 차원에서 타깃이 정해진 후, 충분한 전략적 논의 없이 연구자에게 전달되고, "이거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경우다. 타깃의 과학적 기반이나 의학적 가능성은 일정 부분 검토됐겠지만, 시장성과 경쟁 환경까지 충분히 고려됐는지는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타깃 선정과 개발 방향이 경영진의 판단 아래 정해진 뒤, 그 이후의 실행과 검증 책임이 연구자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구조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험 설계부터 타깃의 과학적 검토, 외부 설득을 위한 근거 마련이나 개발 당위성에 대한 논리 구성까지 연구자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개인에게 과중한 부담이 쏠리고, 조직 전체의 시야도 협소해질 수 있다. 프로젝트의 전략적 배경이나 타깃의 시장 내 위치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개발이 시작되면, 진행 도중 방향을 조정하기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기업들이 종종 '연구 중심'이라 불리는 것은 곱씹어볼 만하다. 연구자의 성실함과 과학적 통찰은 신약개발의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좋은 연구가 시장성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타깃의 매력과 개발 가능성을 조직 전체가 유연하게 함께 고민하고 설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과학과 사업, 연구와 전략이 각각 고립되지 않고 긴밀하게 맞물리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시장이 요구하는 것을 개발하는 것이 신약개발의 올바른 방향 아닐까.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고집하는 방식은 고착을 낳고, 결국 뒤처지게 만든다. 물론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 약물의 가치는 분명하다. 그러나 신규(novel) 타깃일수록 높은 수준의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고, 타깃의 전략적 매력을 증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이 투입된다. 비임상 단계부터 글로벌 제약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근거를 준비해야 하고, 해당 기전이 왜 기존 약물보다 우월한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논문이 아니라 설계가 관건이다.

많은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 바이오텍이 신약개발을 끝까지 자체적으로 완주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기술이전이 여전히 핵심 전략이라면, 초기 단계부터 해당 타깃이 '팔릴 수 있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과 시장, 의학과 사업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전략적 포지셔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다.
선택과 집중이 절실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필요로 하는 영역을 좁고 깊게 파고드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미충족 수요가 뚜렷하고, 글로벌 제약사들의 관심이 집중되며, 후속 약물 개발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구조를 분석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래야 임상에서, 그리고 기술이전 테이블에서 승산이 생긴다.
그렇다면 개인의 연구 관심사로 시작된 개발이 아니라, 시장의 수요와 경쟁 환경을 반영한 전략적 설계가 필요하다. 타깃을 좇는 연구를 넘어, 근거 있는 선택과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 성장의 조건은 전략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