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일 차관, 32년 복지부 공직 마무리
코로나, 연금 개혁, 의한일원화 모두 기억에 남아

"제 인생은 3개의 그림이에요.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렇게 시골의 풍경화가 1번째 그림이에요. 2번째 그림은 과천을 거쳐서 세종으로 온 도시속의 풍경입니다. 마지막 그림은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자유롭게 쉬는게 아니라 어디서든 일을 하는 거에요. 공직은 짧고 인생은 기니까요."
이기일 복지부 제1차관은 지난 25일 복지부출입기자협의회와 가진 간담에서 지난 32년간 공직 생활을 한 장의 풍경화 처럼 담담하게 풀어냈다.
일단 충전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지만, 앞으로 30년은 더 일 할 계획이라는 이 차관은 매일 보던 직원들과 헤어지는 것은 아쉽지만 앞으로 새로운 도전을 통해 여전히 '세금을 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 같아 설레인다고 말했다. 본인의 나이에 0.7을 곱해 아직 42세라고 말할 때는 잠깐동안 리액션이 고장나기도 했다.
"실외 마스크 벗던 날, 연금 개혁...절대 못 잊어"
코로나 팬데믹과 사투를 벌이던 시절, 그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동이 트기 전부터 움직였다. 그리고 2022년 5월 2일, 실외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한 그날이 가장 뜻깊었다는 이 차관. 그는 당시에 국민들이 거리두기를 견디고, 의료진이 목숨 걸고 진료에 나서며, 공무원들이 밤낮 없이 현장을 지켰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 세 그룹이 없었더라면 가장 낮은 코로나 치명률이라는 결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생활 중 가장 기쁜 날은 지난 3월 20일,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2007년 이후 18년 만에 연금 개혁이 이뤄진 날이다. 그는 "이미 연금은 95도쯤 와있었다. 선배들이 조금씩 온도를 올려줬고 마지막을 완성한 것"이라고 겸손해 했다.
그의 복지부 여정은 보건의료의 가장 깊은 현장부터 정책의 최종 타결까지 전방위였다. 돌아보면 '2030년까지 의한일원화하고 학생을 배출한다'는 정책은 거의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2018년 8월 30일 관계자들이 모여 사인을 하고, 자축의 술잔을 기울였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협회의 미참여로 무산됐다. 그는 “정말 다 됐다고 생각했다. 의한일원화가 됐다면 의대정원 증원도 지금보다 쉬웠을 것 같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또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완성하지 못했던 것도 아쉬운 기억이다. 이 차관은 "전달체계는 감기는 의원, 맹장수술 병원, 뇌질환 심장병은 상급종병으로 하는 것이다. 모두 논의가 됐지만 병상문제가 합의가 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 차관은 "100% 완벽한 정책은 없다. 70%라도 현장 수용성이 있다면 시작해야 한다"면서 그동안 미완에 그친 정책들을 회고하며 조언했다.
'긍정적 사고'와 '공부', 사람을 얻는 '진정성' 중요
이 차관의 MBTI는 ENFJ다. 타고난 리더이며, 동료들의 감정적 필요를 이해하고 지원적인 작업 환경을 조성하는 데 특히 능숙하다. 그런만큼 그는 직원들에게 3가지를 강조했다. '긍정적 사고와 꾸준한 공부, 그리고 사람을 얻는 진정성'이다.
그는 "복지부 공무원들 진짜 고생많았다. 메르스를 지나 세월호, 코로나까지 우리 직원들은 정말 훌륭했다"며 "코로나 시절에도 이야기 했듯이 어렵고 힘든 때가 있으면 또 나아지는 때가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보건의약단체를 향해서는 "의료계와 정부는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환자 안전을 지키는 목적은 똑같다. 하나 틀린 것은 의료계는 환자 생명을 수호하고 정부는 보호하는 것"이라며 "의료부분이 어려움이 있더라도 대화와 소통 통해서 제자리를 찾아가 줄 것을 부탁드린다. 많이 신세졌고 국민 생명과 환자 안전을 위해 함께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복지부에서 동고동락한 직원들과 공직자로서 일할 수 있어 감사했다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세금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세금을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했다. 순례길을 걷고, 일본의 고령화 정책을 직접 보고 배우겠다는 계획도 함께 전했다. '공직은 짧고 인생은 길다'는 말 속에는 그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가 함께 묻어났다.
이기일 차관은 제3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보건복지부 보육정책과장, 인사과장을 거쳐 대변인, 보건의료정책관, 보건의료정책실장 등을 지내며 보건의료정책과 건강보험정책을 총괄했으며 복지부 제2차관과 제1차관으로 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