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가 혁신신약을 개발하지 않고는 글로벌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대표이사인 제가 봤을 때 현재 유한양행은 새로운 체계로 나아가기 위해 연구개발(R&D)에서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는 단계로 판단됩니다. 저희는 R&D를 확대할 의사가 충분히 있고, 유능한 사람을 영입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1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소재 본사에서 개최한 제10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관 수정'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유한양행의 이번 주주총회의 주요 부의 안건 중 하나는 제2호 의안인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이다. 회장과 부회장을 약 28년만에 신설하겠다고 전하며 '기업 사유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주주총회에서 압도적 찬성(찬성률 95%)을 받으며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은 통과됐다.

조 대표는 "R&D 인재 영입을 하기 위해서는 사장이나 부사장 등의 직급이 필요한데, 회장 등의 직제가 없는 현행 구조로는 매번 영입할 때마다 주주총회를 열어야 한다"며 회장 및 부회장직 신설 이유를 밝혔다. 이어 "2021년 기준 자산 총액이 2조원이 넘어 상법상 이사회 구성원 중에 사외이사 수가 사내이사보다 많아야 하며, 이사회 내에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감사위원회가 설치돼야 하는 등 규정이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회사에 사장 2명, 부사장이 6명 있는데 임명 당시 법무법인에 컨설팅을 의뢰한 결과 상법은 관련이 없지만 회사 정관에 위배되니 정관을 수정하는 게 좋겠다고 권유를 받아서 고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대표는 "본인의 명예를 걸고 회장직과 부회장직 신설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한 행동이 아니다"며 "회장과 부회장에 어떤 사람이 오게 될 지도 아직 정해진 부분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전 유한양행 사장)이 회장직에 오르게 되는 게 아니냐는 주주의 질문에 대해서도 조 대표는 "본인이 직접 해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또 "유한양행은 대주주가 없기 때문에 사유화는 불가능하다"며 "회장과 부회장 제도를 주더라도 임원의 일부일 뿐이지 다른 특혜를 주는 것은 아니다"고 부연했다. 유한양행은 6명의 부사장이 있고,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큰 회사로 가기 위해 회장직을 신설한다는 게 조 대표의 입장이다.

이날 유한양행 본사 앞에서는 회장, 부회장직 신설안 철회 등의 내용이 담긴 트럭 시위가 진행됐다. 조 대표는 트럭 시위에 대해 "실체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의견이 있다는 걸 명심하겠다"며 "앞으로 회사 경영에 반영할 것은 반영하고 고칠 것은 고치는 계기로 삼겠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주주총회에서는 유한양행 창업주인 고(故) 유일한 창업주의 손녀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도 참석해 큰 주목을 받았다. 유일링 이사는 "유일한 박사님의 뜻과 이상, 정신 등이 회사가 나아가야 하는 길"이라며 "이 방법이 정말 정직한지, 얼마나 사회와 경영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등을 생각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주주총회가 끝난 후 이정희 의장은 회장 선임 시점을 물어보는 취재진에게 "잘 모르겠다"며 "확실한 건 나는 회장직에 오를 생각이 없다"고 했다. 유일링 이사는 "할 말은 다 했다. 모두가 나의 뜻을 알 것"이라며 주주총회장을 떠났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폐암 치료 혁신신약인 '렉라자(성분 레이저티닙)'로 글로벌 시장 공략을 앞두고 있는 유한양행이 회장 및 부회장직 신설을 통해 유능한 인재 영입을 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게 됐다"면서 "조 대표가 언급한 것처럼 R&D 인재 영입을 위한 글로벌 스탠더드 체계를 구축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